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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재료와 리뷰/물감 재료

옛날 화가는 물감을 어디에 넣어 썼을까?

by 사탕고양 2022. 6. 18.

물론 미술의 역사를 가장 크게 바꾼 발명품은 역시 카메라입니다. 그동안 본대로 그리던(실제로는 살짝 조작된 이미지였긴 하지만요)시대가 카메라가 발명되면서 많은 화가들이 사람과 풍경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건 경쟁력이 없어졌습니다. 카메라가 훨씬 더 잘했거든요. 그래서 화가들은 기록을 위한 형식을 위한 그림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카메라가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그리고 그 이후에 모더니즘 탄생에 영향을 끼친 발명품이긴 하지만 미술의 역사를 바꾼 발명품이 사실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1841년에 발명된 물감 튜브입니다.

1842년에 출시된 윈저앤뉴튼의 튜브 유화 물감

지금 물감은 전부 튜브에 담겨 판매되고 있지만 그 이전에는 안 그랬습니다. 물감은 스튜디오(화실)에서 만들어 썼거든요. 도제가 하는 일 중에 상당한 일이 물감 제작이었습니다. 그래도 물감을 공방에서 사오기도 했는데 보통 이런 돼지 방광에 담겨 판매됐습니다.

돼지 방광 물감 튜브

돼지 방광에 넣으면 오랫동안 물감이 보관됐기 때문에 물감가게에선 물감을 만들어 이런 형식으로 판매했다고 하내요. 하지만 형태에서 볼 수 있듯. 개봉하면 다시 닫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미리 만들어 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일 뿐이었죠. 많이 만들어 필요한 만큼 짜서 쓰고 싶다는 요청은 결국 결실을 맺습니다. 유리용기 튜브에요.

1840년의 유리용기 유화물감

유리 용기에 넣고 금속 캡이 있는 이 튜브는 필요한 만큼 물감을 짜서 쓰고 다시 닫아 둘 수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나오고 얼마 뒤에 혁명적인 발명품으로 금방 뒤안길에 들어서죠.

1841년 미국의 화가 John Goffe Rand는 주석으로 만든 튜브를 제작합니다. 이 발명은 너무나도 혁명적이었습니다. 얼마나 혁명적인지 이듬해에 각 브랜드에서 도입해 속속 출시됩니다. 이전에는 필요한 만큼 제작해서 담았던 유화물감은 이제 공방에서 대량으로 제조해 튜브에 넣을 수 있고 화방에서 언제든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됐습니다. 유화 물감 대량 생산의 시대가 열린 것이죠.

물건을 대량으로 생산하면 어떻게 돼죠? 가격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필요한 만금 짜서 쓸 수도 있고 야외에도 가지고 나가서 쓸 수 있게 되죠. 그동안 스튜디오에서만 그리던 그림을 해방시키게 했던 발명품입니다. 이 이후에 밖에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이 늘어납니다. 아마 취미로 유화를 그리는 사람도 이 시대에 크게 늘었을 것입니다. 이전과는 접근성이 달라졌으니까요.

스튜디오에서 세팅된 인물이나 정물, 그리고 고정된 조명에 의한 그림이 아니라 밖에서 본 것들. 그리고 시간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색들을 보고 그걸 표현할 수 있게 됐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카메라보다 물감 튜브가 먼저 미술 역사의 흐름을 형명적으로 바꿨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카메라와 물감 튜브는 사실상 같은 해에 출시했고 화가들은 스타일이 변했다 하더라도 보이는 그대로를 표현한다는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튜브 물감은 쉽게 살 수 있는 반면 비싼 카메라가 정말 퍼지기까진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을테니까요.

미술사에서는 카메라 발명 후 화가들이 더이상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실제로 카메라 발명 이전에는 현실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그렸다기 보다는 스튜디오 안에서, 관념으로 그린 그림이죠. 사진의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요청에 따라 얼마든지 실제와 다르게 그려지기도 했습니다(요즘은 사진도 그렇죠). 오히려 현실에 있는 그대로 그리는 사실주의와 자연을 관찰한 그대로 보이게 만든 인상주의가 정말로 화가가 본 그대로를 그렸다고 생각합니다.

튜브 물감의 출시 후 20년 뒤에 인상주의가 등장한 것은 물감 튜브가 화가들을 스튜디오로 부터 해방한 결과이지 싶습니다. 르누아르는 "튜브 물감이 없었다면 인상주의는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을 정도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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