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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재료와 리뷰/물감 재료

포스터칼라와 과슈의 역사

by 사탕고양 2017. 12. 7.

포스터칼라와 과슈

초등학생 시절 미술시간엔 꼭 포스터 그리기가 포함돼 있었다. 포스터를 그리기에 쓰는 물감은 포스터칼라. 작은 병에 담긴 물감을 프라스틱 스푼으로 퍼내 팔레트에 퍼담고 색을 만들어 도화지에 그려나간다. 밝게 만들 땐 흰색을 섞는다. 조금씩 칠하다 보면 어느새 한 장의 포스터가 완성된다. 그러나 의문이 들 때가 있다. ‘포스터 칼라는 포스터 그리는 용도로만 써야 하나?’

 


학생 시절, 추억의 물감 포스터칼라

학생 때 포스터 칼라를 만져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지금도 학교에선 포스터칼라로 포스터를 그리곤 한다. 포스터칼라가 만들어지자마자 교육 현장에 투입됐으니 학교 책상 서랍에 포스터칼라가 들어있던 역사는 아주 길다. 

물로 명암을 조절하는 수채화보단 포스터칼라가 미술 교육에 더욱 적합하다 말한다. 포스터칼라는 색이 정확하며 색조절이나 혼색이 쉽고 비율만 잘 지키면 거의 같은 색을 재현해 낼 수 있어서다.

포스터칼라의 탄생은 칼라 인쇄물에 직접적 영향에 받았기에 칼라 인쇄의 역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제한적인 색상을 쓴 인쇄물의 역사는 길지만, 제대로 된 칼라 인쇄가 처음 등장한 건 1710년이다. 프랑크푸르트의 화가 ‘야곱 크리스토프 르 블론’은 3색만으로 모든 색상을 구현하는 인쇄 방법을 발명했으나 완성된 이미지를 3색으로 분해하고 그걸 다시 인쇄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가 필요했다. 

확실한 풀칼라 인쇄가 등장한 건 몇 십 년 뒤인 1798년에 발명된 석판인쇄법부터이다. 하지만 제작시간 길고 비용이 많이 들어 대량 인쇄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제작 기간을 단축하고 비용이 저렴해진 시기는 산업혁명이 일어난 뒤인 1880년대다.  산업혁명이 일어난 후 상업도 함께 발전했고 이는 홍보의 필요성으로 이어졌고 칼라 포스터에 대한 수요도 크게 증가했다. 

이 시기에 현대 포스터의 아버지라 불리는 프랑스의 예술가 ‘쥘 세레’는 3색 석판 인쇄법을 발명해 비용과 제작시간을 크게 낮추어 본격적인 칼라 인쇄 시대를 열었다. 이후 거리와 서점엔 색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대량 인쇄된 포스터의 등장으로부터 10년쯤 지나자 칼라 잡지가 등장했다.


인쇄 수요가 탄생시킨 물감, 포스터칼라

이때부터 일러스트레이션의 수요가 폭증했다. 포스터, 잡지, 책에 필요한 그림과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포스터를 요구하는 곳이 많아졌다. 동시에 일러스트레이션과 포스터 제작에 적합한 화구의 필요성이 대두했다. 많이 사용하기에 가격이 저렴해야 했고 인쇄용 원본을 만드는 것이기에 내광성이 낮아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색의 정확성은 높아야 했다. 그 요구에 맞게 탄생한 물감이 포스터 칼라다. 포스터 원본을 그릴 때 많이 썼기에 붙은 이름이다.     

쥘 세레는 본격적인 풀칼라 광고 포스터 시대를 열었다


물론 포스터 칼라는 포스터 만들 때만 쓰는 물감은 아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교육으로도 사용됐으며 인쇄와 관련된 그림이나 미술 연습용으로도 사용됐다. 포스터 칼라는 인쇄물 시장에서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 

포스터칼라 탄생 100년 후, 포스터를 비롯한 인쇄물 제작에 컴퓨터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인쇄물이라도 그림은 물감을 써야 감성을 표현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금방 컴퓨터에 자리를 내줬다. 그 뒤 포스터칼라는 인쇄 쪽에서 할 일이 없어졌고 교육과 작품용으로만 사용됐다. 기술 발전으로 저렴하고 내광성 높은 안료가 나온 덕분에 내광성과 내구성이 올라가 지금은 작품용으로 써도 손색없다.

포스터 칼라는 수용성이라 물로 희석해 사용할 수 있고 광택이 없으며 불투명해서 색이 진하고 밑색을 완전히 가릴 수 있다. 명암은 흰색을 섞어 조절한다. 이런 특징을 가진 물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과슈다. 과슈는 불투명 수채물감을 말한다. 

실제로 포스터칼라가 발명되기 전 인쇄용 그림을 그리는 용도로 과슈가 쓰였다. 단지, 과슈는 예술 작품을 만들 때도 쓰이는 물감이라 어느 정도의 내구성과 높은 내광성을 가지고 있다. 즉, 대량 사용을 위해 가격을 낮춘 과슈가 바로 포스터칼라다.


오랜 기간 은근히 사랑받아온 물감 과슈

그렇기에 과슈를 처음 접한 사람은 한가지 궁금증을 가진다. ‘이거 포스터칼라랑 다른 게 뭐지?’ 느낌만이었겠지만 앞서 말했듯 사실이다. 포스터칼라는 과슈에 들어가는 재료의 저렴한 대체제들이 들어 있을 뿐인 사실상 같은 종류의 물감이다. 

과슈가 사용된 기간은 근 600년 정도 된다. 수채물감과 거의 같은 시기다. 과슈는 불투명 수채화를 그리는 용도의 물감이다. 불투명 수채물감이라면 투명수채물감에 흰색을 섞어 그리는 그림도 포함된다. 그러나 투명수채물감에 흰색을 섞어 그린 불투명 수채화와 과슈로 그린 불투명 수채화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과슈는 거의 모든 물감이 불투명해 밑색을 잘 숨기는 편이다.

과슈는 수채물감과 같이 아라빅검을 바인더로 사용한다. 수채물감과 다른 점은 안료 입자가 커 좀 더 불투명하고 불투명도를 더 높이기 위해 석회가루같이 불투명하게 만들어주는 첨가물을 추가했단 점이다.

과슈라고 하면 생소한 사람이 많지만 몇백 년 전엔 그림보다 실용적 목적에서 더 많이 쓰였던 투명수채물감과 달리 과슈는 작품용으로도 많이 사용됐다. 물만 있으면 쓰기 편하고 사용법이 사실상 다른 물감과 다르지 않아 사용하기도 편리하고 내광성이 수채화보다 좋은 편이다.

투명수채화가 영국에서 유행하고 있을 때 유럽 대륙에서는 수채화라고하면 과슈로 그린 그림을 의미했다. 과슈가 사용된 이후 대 인기를 끈 적은 없지만 꾸준하게 사용된 스테디한 물감이다. 여러 부분에서 아주 편리해서다. 삽화나 광고용 일러스트레이션, 예술 작품, 애니메이션 풍경, 디자인 작업 등에서 폭 넓게 사용된다. 사용하는 방법도 다양하게 쓸 수 있다. 수채화처럼 물을 많이 섞어 표현도 가능하다. 물론 투명수채화의 느낌과는 완전히 다르다. 투명수채화랑 달리 종이를 그다지 가리지도 않아 약간 두꺼운 노트에 그려도 된다.

마르크 샤갈의 많은 작품들이 과슈로 그려졌으며 오일파스텔을 사랑한 피카소도 과슈를 사용해 많은 그림을 남겼다. 최근에는 아크릴과슈가 개발돼 겹쳐 칠했을 때 수채과슈와 달리 밑색이 녹아 올라오지 않게 됐고 내구성이 더 높아졌다.

   

마르크 샤갈은 많은 과슈 작품을 남겼다

과슈로 그릴 때 알아둬야 할 점

과슈와 포스터칼라를 쓰는 법은 유화나 아크릴과 비슷하다. 흰색으로 명암을 조절하고 물을 조금씩 섞어 묽지 않은 상태로 얇게 바르면 된다. 과슈는 아크릴이나 유화보다 빨리 마르나 굳으면 물로 다시 녹여 쓸 수 있다. 유화나 아크릴과 비슷하다고 해서 뻑뻑한 상태로 칠할 필요는 없다. 바르기 쉬울 정도로 물을 섞는다. 단, 물을 많이 섞으면 얼룩지므로 농도 조절이 필요하다. 

명암을 조절할 때 쓰는 흰색은 두 가지다. 징크화이트와 티타늄화이트. 징크 화이트는 색조를 적게 변화시키며 명암을 조절할 때 쓰고 티타늄화이트는 밑색을 강하게 은폐하므로 완벽한 커버가 되는 대신 색을 파스텔톤으로 만든다. 흰색을 너무 많이 쓰면 밝은색이 아니라 밝은 회색이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같은 안료로 만든 물감이라도 투명수채화와 과슈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과슈 채색에서 주의해야할 점은 수채화처럼 구역을 나눠 색을 칠해야한다는 점이다. 유화나 아크릴은 다른 색 위에 덧칠해가며 올려가도 되나 과슈는 밑색이 덧칠한 물감의 수분에 의해 녹아 덧칠한 색과 혼색 되는 점을 기억하자.

과슈가 포스터칼라와 비슷하다고 해서 완벽히 불투명한 상태로 채색을 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과슈도 일종의 수채화 물감이기에 약간 물을 많이 발라 부드럽게 칠할 수도 있으며 투명 수채화와 같은 스타일로 채색이 가능하다. 두 가지 기법을 모두 활용하는 것이 과슈를 100% 활용하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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